미국과 중국 정상이 무역 전쟁 9개월 만에 대한민국 부산에서 휴전에 합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내년 4월 중국을 방문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답방 형태로 미국을 방문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은 30일 부산 김해공항에 주둔 중인 공군부대의 접견시설 나래마루에서 약 100분간 정상회담을 가졌다. 회담을 통해 중국은 희토류 수출 통제 조치를 유예하고 ‘좀비 마약’이란 별칭으로 알려진 펜타닐의 미국 유입 차단에 협조하기로 했다. 그 대신 미국은 중국에 적용하던 ‘펜타닐 관세’를 기존 20%에서 10%포인트 즉각 인하하기로 했다. 두 나라가 서로 상대 선박에 부과하던 입항 수수료도 유예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으로 돌아가는 에어포스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10점 만점에 12점이었다. 우리는 훌륭한 회담을 가졌고 많은 부분에 합의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대량의 (미국산) 대두와 농산물을 당장 구매할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폭스비즈니스네트워크에 “중국이 미국산 대두를 내년 1월까지 1200만t, 향후 3년 동안 매년 최소 2500만t 사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정상회담에서 “장기적 이익이라는 큰 계산을 해야 하고, 상호 보복의 악순환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그러면서 “평등·존중·호혜의 원칙에 따라 계속 대화할 수 있으며, 문제 목록은 줄이고 협력 목록은 늘려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위대한 국가’로, 시 주석을 ‘존경받는 위대한 지도자이자 오랜 친구’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시 주석 역시 “미·중은 친구가 돼야 한다”며 “중국의 발전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비전과도 함께 간다”고 덕담했다.
그러나 불씨는 남아 있다. 합의가 1년짜리여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매년 협정을 재협상할 예정이다. 이 협정은 1년을 넘어 훨씬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정상회담 직전 중국과 러시아를 거명하며 1992년 이후 33년간 중단했던 핵무기 시험을 재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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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오랜 친구” 시진핑 “미·중 친구”
…불씨는 남아
2019년 6월 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이후 6년4개월 만에 만난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무역 합의는 ‘빅딜’이라고 보기엔 조금 부족한 면이 있다. 미국이 펜타닐 관세를 10%포인트 인하했지만, 인하 후에도 중국산 제품에 부과되는 평균 관세는 45~47%로 추산될 만큼 높은 편이다.
미국 역시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한 채 서둘러 휴전에 들어가며 자신의 약점을 노출했다. “부산 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미국 독주 시대를 끝내고 세계경제 무역의 G2(주요 2개국) 시대의 도래를 암시한 것”(왕원 중국 인민대 충양금융연구원장)이라는 평가 역시 중국 측에서 나오는 이유다.
다만 두 나라 정상 모두 9개월간의 무역전쟁을 통해 정면충돌의 위험을 알게 됐고, 이번 회담에서 갈등을 의식적으로 피하려 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시 주석은 회담 전날 대두 등 미국산 농산물 구매를 재개하도록 승인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높이 평가한다”고 사의를 밝혔다.
두 정상은 대만과 중국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같은 민감한 문제에 대해선 깊이 논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엔비디아 등 미국산 인공지능(AI) 칩의 중국 내 공급 허용, 중국의 틱톡 미국 사업권 매각 등에 대해서도 이번에는 눈에 띌 만한 언급이 없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는 “중국이 회담 직전에 확정한 5개년 계획의 외교 부문에서 ‘대국 관계를 전체적으로 안정되게 유지한다’는 결정에 부합한 회담”이라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큰 불길이 진화된 데 대해 두 나라 모두 만족감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위대한 지도자와 아주 많은 결정을 내려 더 결정할 게 없을 정도”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안에 언제 서명할 것이냐’는 질문에 “곧 할 것”이라며 “큰 걸림돌이 별로 없다”고 했다. 시 주석 역시 회담 중 “대립보다 대화가 낫다”고 말을 건넸다고 한다.
미·중 두 강대국은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간 뒤 내년부터 다시금 무역질서 재편을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마침 내년 중국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의장국을, 미국은 G20 정상회의를 주최하며 다자 무대를 앞두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내년 4월 방중 일정을 공지하면서, 시 주석이 그 이후 어느 시점에 사저인 마러라고 리조트가 있는 플로리다주 팜비치나 백악관이 있는 워싱턴DC 중 한 곳을 방문할 것이라고 했다. 내년도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도 후보군 중 하나로 거론된다.